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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창고 인물전 VOL.65

[미미꽃화원] 1972년부터 대를 이어온 용인의 역사, 초등학생 꼬마 시절 단골이 시집가서도 찾는 유방동 식물원

강주연 에디터 2026.07.06 👀 읽음 102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프로필 인물 사진
"저희 미미화원의 시작은 무려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시아버님께서 처음 문을 여셨던 이 귀한 터전에, 제가 '꽃집 남자'였던 남편에게 시집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렇게 시가(媤家)의 가업을 이어받아 용인 김량장동에서 오랜 시간 계속 화원을 운영해 오다가, 4년 전 이곳 유방동 대로변으로 자리를 옮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 일이 제 적성과 너무나 완벽하게 잘 맞았어요. 매일 아침 꽃을 바라보고 식물을 돌보는 일이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으니, 꽃집 며느리로 들어와 35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것 자체가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운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업체창고 인터뷰 노트
규격화된 포장 레이아웃과 사전 예약 결제 시스템만을 고수하는 트렌디한 도심형 플라워숍 형태보다 1972년부터 처인구 김량장동을 거쳐 현재 유방동까지 2대째 축적된 반세기 역사의 품종 선별 노하우, 예약 없이도 즉석에서 풍성하게 피워내는 베테랑의 시술력(꽃꽂이), 그리고 희귀 야생화 중심의 철저한 위생 관리 환경이 유방동·둔전역 일대 전 연령대 주민들의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추고 대를 이어 찾는 지역 대표 식물원형 헤리티지 공간을 구축하는 데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1972년 시아버님의 유산, 김량장동을 거쳐 유방동에 닿은 35년의 봄

저희 미미화원의 시작은 무려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시아버님께서 처음 문을 여셨던 이 귀한 터전에, 제가 '꽃집 남자'였던 남편에게 시집을 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연이 시작되었죠. 그렇게 시가(媤家)의 가업을 이어받아 용인 김량장동에서 오랜 시간 계속 화원을 운영해 오다가, 4년 전 이곳 유방동 대로변으로 자리를 옮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 일이 제 적성과 너무나 완벽하게 잘 맞았어요. 매일 아침 꽃을 바라보고 식물을 돌보는 일이 단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으니, 꽃집 며느리로 들어와 35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것 자체가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운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산이 세 번을 넘게 바뀐 35년, 그리고 시아버님의 세월까지 더하면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미미화원의 뿌리는 '가족의 유산'에 있습니다. 김량장동 시절부터 지금의 유방동에 이르기까지, 꽃을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가업을 잇고 그것을 천직으로 여기며 자리를 지켜온 사장님의 진정성은 미미화원을 단순한 상점을 넘어 용인의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었습니다.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사진 2 - 업체창고 ⓒ업체창고

학생의 용돈부터 기업의 개업 화분까지, 대를 이어 문을 두드리는 곳

동네 주민분들이 방앗간 앞 지나치듯 편하게 들러주시는 덕분에 오랜 단골들이 정말 많습니다. 주로 주변 상가의 개업 화분이나 축하 승진 화분, 새로 입주하시는 분들의 축하 화분을 보러 많이들 오시죠. 하지만 가장 마음이 따뜻해질 때는 어린 학생들이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나 어버이날에 용돈을 모아 수줍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예요. 또 어떤 분은 집에 언제나 생기를 두고 싶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찾아와 이쁜 꽃을 한 아름 안고 가시기도 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인생 속 특별한 날에는 항상 미미화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둔전역 인근 주민들의 삶의 궤적 속에 미미화원은 늘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굵직한 비즈니스용 개업 화분부터 부모님을 향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한 송이 꽃까지, 유방동 주민들의 기쁨과 축하의 순간에는 언제나 미미화원의 푸른 식물들이 마중물을 부어왔습니다.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사진 3 - 업체창고 ⓒ업체창고

가격 계산 대신 손맛으로 뚝딱, 작은 야생 식물원이 주는 압도적 풍요로움

요즘 대형 마트나 인터넷으로도 식물을 산다지만, 저희 집을 고집하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미미화원에는 언제나 셀 수 없이 많은 꽃과 식물이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예약 없이 아무 때나 불쑥 찾아오셔도 그 자리에서 원하는 대로 뚝딱 만들어 드립니다. 머릿속으로 단가 계산해가며 인색하게 꽃을 고르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풍성함이 떨어져요. 저는 가격 계산보다 손님이 만족할 풍성함을 먼저 보기에 거침없이 바로 꽂아드립니다. 손님들도 그 베테랑의 속도와 인심을 가장 좋아하시죠. 게다가 매장이 늘 깔끔하게 정리정돈되어 있어 오시는 분들마다 '작은 식물원에 온 것 같다'고 감탄하십니다. 시중에서 보기 드문 귀한 야생화가 가득한 것도 저희만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온라인 마켓이 흉내 낼 수 없는 미미화원만의 독보적인 고집은 '아끼지 않는 풍성함과 즉흥성'입니다. 예약 전쟁을 치러야 하는 요즘 꽃집들과 달리, 언제든 문을 열면 압도적인 양의 생화와 희귀 야생화가 반겨줍니다. 가격표를 저울질하기보다 손님의 행복을 위해 현장에서 뚝딱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35년 차 베테랑의 손놀림은 손님들에게 깊은 신뢰를 선물합니다.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사진 4 - 업체창고 ⓒ업체창고

병아리 옷을 입은 꼬마부터 시집간 단골까지, 식물로 맺은 눈물과 감동의 인생들

처음 화원 일을 시작했을 땐 서툰 마음에 눈물 쏙 빠진 적도 있었어요. 5만 원짜리 화분을 마음대로 4만 원만 툭 던지고 안 판다는데도 가져가 버린 손님이 계셨는데, 그게 어찌나 분하고 서럽던지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더 큰 감동과 보람으로 보상받았습니다. 한 번은 어버이날에 노란 병아리 옷을 입은 어린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에게 주려고 꽃다발을 사 갔었어요. 그런데 서두르다 돈을 깜빡 안 내고 간 거예요. 학교 시간도 늦었을 텐데 숨을 헐떡이며 다시 돌아와 돈을 꼭 쥐여주고 가던 그 귀여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또 김량장동 초등학교 시절에 조그만 손으로 꽃을 사 가던 아이가, 저희가 4년 전에 이곳 유방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도 오직 '미미화원'이라는 이 간판 하나를 기억하고는 시집을 가서 남편 손을 잡고 다시 찾아왔을 땐 정말 가슴이 벅찼죠. 제가 애지중지 키우던 '드래곤볼'이라는 식물이 죽어 속상해하는 걸 보시고는, 단골손님께서 똑같은 식물을 구해 깜짝 선물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이 그저 꽃을 파는 가게를 넘어, 주민들의 기억 속에 언제나 '가장 예쁘고 다정한 화원'으로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화원을 운영하며 겪은 파도는 사장님을 더욱 단단하고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억지 부리던 손님에게 흘린 눈물은 잊지 않고 돈을 내러 다시 뛰어온 병아리 같은 아이의 순수함으로 씻겨 내려갔고, 자리를 옮겨도 간판을 보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의리와 정으로 채워졌습니다. 미미화원은 단순한 꽃집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식물을 매개로 인생을 공유하는 온기 가득한 사랑방입니다.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사진 5 - 업체창고 ⓒ업체창고
미미화원 사장님 인터뷰 사진 6 - 업체창고 ⓒ업체창고

Editor's Note

유행 주기가 빠른 플라워 마켓 시장에서 1972년부터 지금까지 한 상호를 지키며 2대째 내려오는 화원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김량장동의 오랜 역사를 지나 포곡로 유방동 대로변에 새 둥지를 튼 지 4년, '미미화원'의 문을 열면 세련된 척하는 차가움 대신 초록빛 야생화가 뿜어내는 싱그러운 압도감과 사람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곳은 가격을 잴 시간에 꽃 한 송이를 더 얹어 뚝딱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35년 내공의 사장님이 계신 곳이자, 노란 병아리 옷을 입던 초등학생 꼬마가 자라 한 가정을 이루고도 간판을 보고 다시 찾아오는 기억의 저장소입니다. 세련된 인테리어보다 깨끗하게 정돈된 진짜 식물원의 가치를 알고, 반려식물과 꽃을 통해 인생의 힐링을 얻고 싶다면 반세기 헤리티지를 품은 미미화원이 언제나 정답이 되어줄 것입니다.
강주연
용인시 대표 에디터
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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