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네 선택

업체창고 인물전 VOL.37

둔전리 [천일공구] 32년, 둔전리의 고장 난 일상을 수리하는 '만물 지도'

강주연 에디터 2026.03.29 👀 읽음 84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프로필 인물 사진
"94년부터 지금까지 32년을 이 일만 했어요. 창고가 복잡해 보여도 제 머릿속엔 정확한 위치가 다 있죠. 항상 같은 자리에 비슷한 품목, 연관된 것들을 모아두거든요. 손님들이 '이런 게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하며 들어왔다가 딱 맞는 부품을 찾아낼 때, 그 안도하는 표정을 보는 게 제 일상의 보람입니다."
업체창고 인터뷰 노트
1994년 시작해 건물이 헐리고 자리를 옮기면서도 사장님은 한 번도 '손님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32년째 둔전리 대로변을 지키고 있는 [천일공구]는 단순한 철물점이 아닙니다. 우선 규모면에서 굉장히 크고 수만 가지 부품이 얽힌 창고 속에서 사장님은 눈을 감고도 물건을 찾아내는 '살아있는 지도'이자, 무리하게 힘주어 살다 고장 난 우리네 일상에 "천천히 열을 식히며 가라"고 조언하는 지역의 현자입니다.

머릿속에 저장된 수만 가지 부품의 질서

94년부터 지금까지 32년을 이 일만 했어요. 창고가 복잡해 보여도 제 머릿속엔 정확한 위치가 다 있죠. 항상 같은 자리에 비슷한 품목, 연관된 것들을 모아두거든요. 손님들이 '이런 게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하며 들어왔다가 딱 맞는 부품을 찾아낼 때, 그 안도하는 표정을 보는 게 제 일상의 보람입니다.
사장님의 창고에는 세월이 만든 질서가 있습니다. 수만 개의 부품 중 단 하나를 정확히 집어내는 손길은 32년이라는 시간이 쌓아 올린 직관입니다. 둔전리 사람들에게 천일공구는 '혹시나' 하고 갔다가 '역시나' 하고 해결책을 들고 나오는 든든한 보물섬입니다.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사진 2 - 업체창고 ⓒ업체창고

"무리하지 마세요, 힘으로만 하면 망가집니다"

드릴로 구멍 하나 못 뚫고 날을 송곳처럼 다 태워오는 분들이 계세요. 회전이 너무 빠르면 불만 먹고 정작 구멍은 안 뚫리거든요. 천천히 열을 식히면서 해야 합니다. 우리네 사는 것도 비슷해요. 너무 저렴한 것만 찾아도 문제지만, 용도에 맞지 않게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결국 고장이 납니다. 저는 물건을 팔 때 항상 말해요. '무리하지 마시라'고요.
철물점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속도 조절'의 미학은 인생론과 닮아 있습니다. 빨리 뚫으려다 날을 태워버린 손님에게 사장님이 건네는 건 새 제품만이 아닙니다. 물건과 삶을 대하는 '여유'와 '정확한 용도'에 대한 철학입니다. 천일공구는 물건을 파는 곳을 넘어,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사진 3 - 업체창고 ⓒ업체창고

"손님과의 약속, 32년 만에 처음 갖는 한 달에 한 번의 휴식"

가게 문을 여는 건 손님과의 약속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야 하죠. 요즘은 여성분들이 세면대나 변기를 직접 고치겠다고 많이 오세요. 한가할 땐 직접 방법도 알려드리는데, 그분들이 수리에 성공해서 기쁘게 돌아오시면 저도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30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이제야 겨우 넷째 주에 한 번씩 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장님에게 영업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무게입니다. 32년 만에 처음으로 '한 달에 한 번 휴무'를 선언한 사장님의 뒷모습에서 지독할 정도의 성실함을 읽습니다. 초보 수리공들에게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는 사장님의 마음은, 둔전리 모든 집이 문제없이 돌아가길 바라는 파수꾼의 마음입니다.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사진 4 - 업체창고 ⓒ업체창고

"우리가 판 건 끝까지 책임집니다"

천일공구의 자부심은 책임감입니다. 우리가 판 건 끝까지 책임져요. 가끔 다른 데서 산 걸 가져오셔서 우리 집에서 샀다고 우기시는 분들을 보면 난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고쳐 쓸 수 있는 거라면 유상으로라도 A/S를 해드립니다. 물건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게 돕는 것, 그게 제 이름값이라 생각하니까요.
책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상에서 사장님은 '끝까지 책임지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수리 도구를 놓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내놓은 물건이 누군가의 집에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장인정신 때문입니다. 천일공구라는 이름 네 글자는 둔전리에서 가장 단단한 보증수표입니다.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사진 5 - 업체창고 ⓒ업체창고
천일공구건재 사장님 인터뷰 사진 6 - 업체창고 ⓒ업체창고

Editor's Note

둔전리 천일공구 사장님의 손은 기름때가 묻어 투박하지만, 그 손이 만진 물건들은 누군가의 문을 고치고 물길을 틔웁니다.
너무 빨리 가려다 불 먹지 말고, 천천히 열을 식히며 뚫으라
는 사장님의 한마디는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조언일지도 모릅니다.

물건을 팔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쓰이는 인생까지 걱정하는 사장님. 32년의 세월이 녹아있는 이 낡은 공구함 속에는 둔전리를 지탱하는 가장 정직한 '설계도'가 들어있습니다.
강주연
용인시 대표 에디터
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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