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네 선택

업체창고 인물전 VOL.47

[향기나라 비누나라] - 원래 하던 일이니까 묵묵히, 시장 통에서 아이들이 청년이 될 때까지

강주연 에디터 2026.05.19 👀 읽음 44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프로필 인물 사진
"생화 만지고 비누 빚는 게 손도 많이 가고 거칠어지는 중노동인 건 맞아요. 하지만 이 고단한 루틴을 버티는 거창한 원동력 같은 건 따로 없습니다. 그냥 원래부터 내가 하던 일이니까, 매일 아침 당연하게 작업실 문을 열고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업체창고 인터뷰 노트
용인 [향기나라 비누나라] (생화·조화·비누꽃 공방 및 매장), 거창한 포부나 화려한 미사여구는 대지 않습니다. 그저 '내 일이니까 매일 문을 연다'는 묵직한 책임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곳. 3~4일이면 재고를 싹 비워내는 시장통의 날카로운 손님 분석력과, 중고생 꼬맹이가 군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단단한 세월의 신뢰가 이 가게의 진짜 자산입니다.

"원래부터 하던 일이니까, 그저 묵묵하게 문을 엽니다"

생화 만지고 비누 빚는 게 손도 많이 가고 거칠어지는 중노동인 건 맞아요. 하지만 이 고단한 루틴을 버티는 거창한 원동력 같은 건 따로 없습니다. 그냥 원래부터 내가 하던 일이니까, 매일 아침 당연하게 작업실 문을 열고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원래 하던 일이라 한다'는 사장님의 툭 던지는 한마디는, 어설픈 장인 서사보다 훨씬 무서운 생활의 구력을 증명합니다. 화려한 예술가적 환상을 걷어내고, 매일 아침 거칠어진 손으로 비누와 꽃을 다듬는 행위 자체를 삶의 당연한 궤적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묵직한 배짱과 관성이 묻어납니다.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사진 2 - 업체창고 ⓒ업체창고

"손님 눈빛만 봐도 선호도가 보입니다, 시장통에 재고는 사치지요"

조화나 비누꽃이 구석에 재고로 쌓일 걱정은 안 해요. 오시는 손님들이 지금 뭘 원하는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서 딱 필요한 만큼만 가져다 놓거든요. 게다가 여기가 시장통이잖아요. 물건을 들여오면 길어야 3~4일 안에 다 소진되기 때문에, 우리 가게 매대에는 묵은 재고가 머무를 틈이 없습니다.
대단한 데이터 분석 툴이 없어도, 매일 골목에서 손님을 마주하며 다져진 사장님의 안목이 곧 가장 정확한 알고리즘입니다. 손님의 선호도를 칼같이 읽어내어 회전율을 극대화하는 감각, 3~4일 만에 매대를 리프레시하는 시장 골목 특유의 빠르고 영리한 재고 제어 노하우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사진 3 - 업체창고 ⓒ업체창고

"교복 입던 아이들이 군대를 다녀와서도 다시 찾는 문턱"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야 참 많죠.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조잘거리며 가게에 드나들던 코묻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군대까지 다녀와서 늠름해진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고요. '사장님, 아직도 그대로 계시네요'라며 손을 잡고 반가워하는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기서 가게를 해달라고 응원해 주는데, 그 한마디가 다시 장사판에 설 힘을 나게 합니다.
이 집의 단골층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손님을 넘어, 사장님이 지켜본 세월의 기록자들입니다. 청소년기의 풋풋한 기억으로 꽃을 사 가던 아이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청년이 되어 다시 발길을 붙이는 문턱. 47년, 29년 된 노포들처럼 이 공방 역시 누군가의 인생의 한 페이지를 '향기'와 '꽃'으로 온전히 덮어주며 골목의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사진 4 - 업체창고 ⓒ업체창고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사진 5 - 업체창고 ⓒ업체창고
향기나라비누나라 사장님 인터뷰 사진 6 - 업체창고 ⓒ업체창고

Editor's Note

용인 시장 골목, [향기나라 비누나라]의 사장님은 말을 길게 보태지 않습니다.

'원래 내 일이라 한다'는 투박한 대답 속에는 매일 아침 묵묵히 가위와 비누 칼을 쥐어온 정직한 노동의 세월이 깔려 있습니다. 조화와 비누꽃의 회전율을 3~4일 단위로 끊어내는 시장 장사의 날카로운 생존력, 그리고 교복 입던 꼬맹이가 군 전역 후 청년이 되어 다시 찾아와
오래 자리를 지켜달라
고 응원을 건네는 풍경. 이 집의 진짜 격조는 화려하게 포장된 인테리어가 아니라, 한 자리를 미련하게 지켜내며 단골들의 인생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장님의 주름진 손끝에서 완성되고 있습니다.
강주연
용인시 대표 에디터
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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